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전개 (문단 편집) === 1979년 [[10.26 사건]] 발생 ===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자 헌법 규정에 따라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신 맡게 됐다. 최규하는 27일 새벽 4시부터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계엄사령관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이희성]] 육군참모차장을 앉혔다. 12월 1일, 국회는 만장일치로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최규하 대행은 6일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0대 대통령에 정식으로 당선됐고, 8일에 긴급조치 9호를 해제하며 [[문익환]] 목사, [[함세웅]] 신부 등 민주화 운동가 68명[* 죄목은 '긴급조치 위반']을 석방했다. 동시에 [[김대중]]의 가택연금도 해제했다. 그리고 10일에는 후임 국무총리에 [[신현확]]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앉히며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나갔다. 한편 계엄사에는 10·26 사건[* 당시 정식 명칭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전모를 수사하려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됐다. 합수부는 비상계엄 아래에서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수사 기관의 업무를 조정하고 감독했다.''' 이런 강력한 기관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합수부장에 취임했고, 전두환은 보안사 처장들을 합수부 국장들로 임명했다. 그래서 보안사는 중앙정보부, 경찰 등 모든 정보·수사 기관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강력한 기구로 등장했다. 이를 이용한 전두환은 훗날 [[12.12 군사반란]]으로 대한민국 군부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권력 공백기를 틈타 최고 실세로 떠오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